“4·19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 열려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19일(수)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미중남부지회(회장 정태환·이하 향군)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휴스턴협의회(회장 박요한·이하 평통)의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은 노해리 향군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그리고 순국선열 및 4·19혁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 등 국민의례에 이어진 인사말에서 정태환 향군 회장(사진 1)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싹을 띄운 4.19혁명 정신을 기억하고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지난해 저희 향군 주최로 휴스턴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했다”며 “늦었지만 잘했다는 평가와 많은 분들의 격려과 성원으로 향군은 4.19혁명 기념식을 계속 사업으로 발전적으로 거행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오늘 행사는 특별히 민주평통과 공동으로 개최하게 돼 박요한 평통회장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정 회장은 “63년전 건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반을 만드시고 훌륭한 업적을 많이 이루셨지만 장기집권으로 권력투쟁과 부정선거 등으로 인해 반정부투쟁 시위. 대모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500여명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승만 정권은 마감되며 4.19혁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경제부흥과 현재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의 기초를 이루신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 탄생의 기회가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인사말에서 박요한 평통회장(사진 2)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전문을 소개하고 “이 소중한 날을 맞아 우리는 영원히 기억될 민주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도 희생적인 시간이었는지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4·19 혁명은 성공한 혁명이다. K-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전문에도 명시되어 있는 4·19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이 시대에는 우리가 앞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많이 있다”며 “우리는 함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이 우리의 4.19 혁명의 유산이다.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영원히 지키며, 평화와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념사에서 주휴스턴대한민국총영사관 정영호 총영사(사진 3)는 4.19 혁명은 국민들이 부패한 정권에 항거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사건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절차는 민주주의 완성인데 부정선거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었다고 강조했다.
정 총영사는 그러나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려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총영사는 건국의 아버지인 이승만 대통령만큼 민주주의 정신이 투철한 지도자는 없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총영사는 또 올해 70주년을 맞이하는 한미동맹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시작이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군사동맹의 가장 핵심이었지만, 오늘날 한미동맹은 안보동맹을 넘어서 미래·첨단 과학기술 분야까지 포함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4·19혁명유공자인 조행자 존스코리안댄스그룹 단장(사진 4)은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당시 여고생이었다며 4월11일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라디오에서 김주열 학생의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들었다며, 당시 “마산 시민들은 울었고, 하늘도 땅도 울었다”고 말했다.
조 단장은 당시 대학생과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도 시위에 참가했다며 자신도 선생님 말씀대로 책가방에는 교과서 대신 돌멩이를 가득 채워 다른 학생들과 시민들과 함께 경찰서로 돌진했다고 말했다.
조 단장은 “‘탕, 탕, 탕’ 총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왔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여기저기 쓰러졌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조 단장은 “친구와 저도 총에 맞았는데, 친구를 관통한 총알에 나도 맞았다”며 “총에 맞아 쓰러지는데 또 다른 총알이 날아와 배를 관통했다”고 말했다.
조 단장은 “피를 흘리며 쓰려진 저는 개인병원에서 마취도 없이 배속에 박힌 총알을 빼어낸 후 부산 제5육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해 시체실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조 단장은 “화장터로 옮겨지는 도중에 제가 팔이 움직이면서 ‘물, 물’이라고 신음했지만 군인들은 저를 바닥에 내던지고 가버렸는데, 다행히 다른 시민에게 발견돼 다시 수술실에 옮겨 겼고, 수혈을 받아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고 4·19항쟁 당시의 경험을 소개했다.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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