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기념식서 이승만 ‘찬양’ 없길

4·19혁명 희생자와 부상자, 유공자, 혹은 유가족이 지난 19일(금) 휴스턴한인회관에서 열린 ‘제64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역사 최초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도록 한 대통령이고,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 대통령이며, ‘과’(過)도 있지만 ‘공’(功)도 있기 때문에 ‘국부’(國父)로 추앙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승만 정권의 헌법 유린, 부정부패,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경찰이 무차별 발사한 총탄에 쓰러져간 4·19혁명의 희생자들과 부상자들, 그리고 유공자들이 마치 ‘위대하신 국부(國父)’에 대항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한국의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4·19 혁명 정신을 기리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발전시켜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정부가 4·19 혁명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을 이야기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4·19혁명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을 논해야 할까?
물론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고, 앞(前)이 있으면 뒤(後)가 있고, 왼쪽(左)이 있으면 오른쪽(右)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역대 대통령들도 너나없이 ‘공’(功)이 있고, ‘과’(過)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공에 대한 이야기는 4·19혁명 기념식이 이난 다른 행사에서 했으면 한다.
3·1절 기념식에서 조선의 강토와 외교권을 강탈해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도 인재를 키운 ‘공’이 있다고 말한다면 안중근 의사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6.25 한국전쟁 기념식에서 누군가 김일성에게도 공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호국 영령들은 피를 토하며 분노하지 않을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전두환도 공이 있다고 말한다면 민주 영령들은 이 말을 용납할 수 있을까?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 따른 ‘발췌개헌’에 이어 1954년 ‘사사오입 개헌’, 1958년 12월24일 ‘24파동’(보안법파동)에 이어 1960년 1월23일 ‘4할 사전 투표’와 ‘3인조·9인조 공개 투표’가 그해 3.15부정선거로 이어지자 4월 초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불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마산에서 ”최루탄을 눈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해변가에 버려진 16세 마산상고생 김주열(金朱烈)의 시신”이 발견됐다.
마산 시위에 대해 “이승만은 4월15일 그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런 사태의 비극에 책임이 있는 ‘무분별한 사람들’의 죄는 간과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승만은 ‘젊은 청년들’을 폭동으로 유도하고, 선동하는 ‘정치적 야심가’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활동에 대하여 경고”했다.
결국 민심은 폭발했고, 4월19일 고등학생들과 대학생, 교수들, 그리고 시민들이 서울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월말까지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수만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내년 4·19 혁명 기념식에서는 “4·19 혁명 정신을 기리고…희생자 영령을 추모”하는 이야기만 들렸으면 좋겠다.
양동욱 기자
info@koam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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