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살면서 ‘준틴스’ 모른다고?
6월19일은 ‘흑인노예’ 해방의 날
6월19일은 흑인노예 해방의 날이다. 흑인노예가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날은 1월1일이지만, 6월19일을 흑인노예 해방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남북전쟁이 3년차로 접어들던 1863년 1월1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연방에 반기를 든 모든 주(州)에 있는 “노예는 오늘부터 자유인”이라며 노예해방선언을 했지만, 텍사스의 흑인들은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포고령을 선포한지 2년이 지난 1865년에서야, 그리고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난 4월9일에서 2개월이 넘은 6월19일이 돼서야 노예에서 해방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텍사스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을 접한 건 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해안도시 갈베스턴(Galveston)에서였다. 에쉬턴 빌라(Ashton Villa) 발코니 서서 발표했는지 스트랜드와 22가 사이에 있던 사령부에 포고문을 붙여놓았는지 역사학자들 사이에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고든 그랜저(Gordon Granger) 남부연합군 장군이 갈베스턴에서 노예해방 포고령을 낭독하면서 알려졌다.

그랜저 장군은 포고령에서 미국의 행정수반인 링컨 대통령의 포고령에 따라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음을 텍사스 주민들에게 알린다며, 이후로 노예에서 해방된 모든 흑인에게 개인권리와 재산권이 보장되고 이전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된다고 발표했다.
노예해방 당시 텍사스 인구 중 약 3분의1이 흑인노예로 약 18만3000명에 달했다. 당시 텍사스에 흑인노예의 숫자가 많았던 이유는 미국 전국의 노예 주인들이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포고령을 따르지 않고 있던 텍사스에 자신들이 소유한 노예를 보냈기 때문이다. 노예 주인들은 텍사스를 ‘노예 피난처’ 주(州)로 생각했다. 당시 연방 포고령을 피하기 위해 12만5000명의 노예가 텍사스로 이동해 왔다는 추정도 있다.
텍사스에서 노예해방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79년에 이르러서다. 텍사스 1대 도시 휴스턴을 중심으로 노예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져 왔지만 세계 2차대전부터 인권이슈가 시들해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1970년에 이르러 노예해방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텍사스 주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당시 1978년 텍사스주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버트 에드워드(Albert Ely Edwards)가 1979년 6월19일을 텍사스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는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키면서 텍사스는 6월19일을 흑인노예해방의날로 공식 지정한 첫 번째 주가 됐다.
그랜저 장군이 노예해방 포고령을 낭독한 애쉬턴 빌라에는 포고령을 들고 서 있는 에드워드 의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한편 애쉬턴 빌라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장교들의 숙소로 사용된 장소이기도 하다.
텍사스 갈베스턴에서 기념하기 시작한 흑인노예해방의날은 전국으로 확대됐고, 2021년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을 연방기념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흑인노예해방 기념일을 ‘준틴스’(Juneteenth)로 부른다. 준틴스는 6월의 ‘June’과 19일의 ‘nineteenth’를 합친 합성어다.
휴스턴는 이멘시패이션(3018 Emancipation Ave.)도로에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을 조성해 놓고 있다. 288번 고속도로와 45번 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한 이 공원은 제3역사보존지구로 불리는 서드워드(Third Ward)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부는 과거 흑인노예들과 그의 후손들이 구입했다. 해방공원은 3,360만달러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7년전 일반에 공개됐다.
준틴스는 ‘자유의날’(Freedom Day), ‘노예해방의날’(Emancipation Day), 또는 흑인 독립기념일(Black Fourth of July)이나 제2의 독립기념일( 2nd Independence Day)로도 불릴 정도로 준틴스는 흑인들에게 독립기념일로도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했지만, 자신의 선조들은 당시 독립하지 못했고, 자신들도 흑백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는 뜻에서다.
노예에서 해방됐지만, 흑인들은 여전히 모일 수 없었다. ‘블랙코드’(Black Codes) 법으로 인해 이동이 제한됐고, 투표를 할 수 없었으며, 부동산 거래는 물론 예배도 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준틴스로 비로소 노예로 뿔뿔이 흩여졌던 가족이 서로 만나고 이웃끼리 축하하고 혹은 교회 등 공동체에서 서로 음식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이후에는 길거리 행사나, 대형 콘서트 혹은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를 갖게 됐다.
준틴스에는 선조 노예들의 희생과 피를 상징하느 빨간색이 요리가 식탁에 오르는데, 빨간색 바비큐 소스를 비롯해 수박, 케익도 빨간색(red velvelt cake), 심지어 음료도 빨간색의 쿨에이드가 식탁에 오른다.
준틴스에는 ‘해피 준틴스’(Happy Juneteenth) 또는 ‘해피 틴스’(Happy Teenth)라고 서로 인사한다. 크리스마스에도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특히 흑인사회에서는 흑인이 아닌 인종과 민족도 해피 준틴스‘라고 인사하는 것을 흑인의 인권향상에 연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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