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우리?’ 떨고 있는 이민자들
정치인들, 막가파식 이민자 루머 확산
“너넨 안 당할 것 같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고양이 먹는 이민자’ 루머가 확산되자 아이티(Haiti) 이민자들은 타 민족 이민자들을 향해 “너흰 안 당할 것 같냐?”고 질문할 것 같다. 대선이나 코로나 등 특정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민자들이 표적이 돼 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이민자가 또 다시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표적이 됐다.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rapists)으로 낙인찍으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가 확산되던 당시 도날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코로나를 종종 ‘중국 바이러스’. ‘쿵 풀루’(kung flu·중국 무슬 쿵푸와 독감을 뜻하는 플루의 합성어)라고 부르면서 바이러스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 2020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잘 구별을 못한다. 모두 아시아인이다. 트럼프는 이것을(인종차별주의를) 하나의 수단(wedge)으로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표적이 됐다.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J.D. 밴스 부통령 후보는 “오하이오 스프링필드에 온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루머를 퍼트렸다.
트럼프 후보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도 아이티를 “시궁창 같은 나라”(shithole country)라고 부르기도 했다.
확산 · 확대되는 루머
공화당의 대선 전략 중 하나는 이민자 공격이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해 이민자들을 “미국의 피를 오염”(poisoning the blood of our country)시키는 사람들이라고 공격했다.
스프링필드시장과 공화당 소속의 오하이오주지사가 직접 나서 ‘개·고양이 먹는 아이티 이민자’는 근거 없는 루머라고 거듭 밝혔지만, 트럼프·벤스 후보는 루머를 더 퍼트리고 있다.
여기에 공화당 정치인들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등 유명인들이 가세하면서 ‘개·고양이 먹는 아이티 이민자’ 루머는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확대, 확산, 강화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도 소유하고 있는 머스크는 자신의 X에 “이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납치해 잡아먹고 있다”(have had their pets abducted and eaten by people who shouldn’t be in this country)고 주장했다.
공화당 소속의 텍사스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테드 크루즈(Ted Cruz) 텍사스연방상원의원은 자신의 X에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아이티 이민자들이 우리를 잡아먹지 않는다”(Please vote for Trump so Haitian immigrants don’t eat us)고 썼다.
휴스턴코리아타운 일부가 지역구인 웨슬리 헌트(Wesley Hunt) 텍사스연방하원의원도 X에 “우리 반려동물들이 카멀라가 데려온 이민자들의 점심거리가 되게해선 안된다”(We cannot allow our pets to become a hot lunch for Kamala’s newcomers)며 트럼프가 당선되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 이민자들을 모두 쫓아내겠지만, 카멀라 해리스는 그 이민자들을 다시 여러분 동네로 데리고 올 것”(will deport migrants who eat pets. Kamala Harris will send them to your town next. Make your choice, America)이라고 주장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려달라고 적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참사
지난 2007년 4월16일 버지니아공대(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Virginia Tech)에서 캠퍼스에서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총상을 입는 대형총격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총격사건의 용의자는 이 대학에 재학 중이던 재미동포 조승희(Seung-Hui Cho)였다.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해서 안 되지만, 만에 하나 재미동포, 즉 한인이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하거나 미국사회를 공분하게 만드는 대형사건에 연루된다면 미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당시에는 미국사회가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 범인 조승희가 한국 출신이라는 것과 관련해 국적 및 인종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과 성숙한 태도를 보여줬다.
피해 당사자인 버지니아공대 커뮤니티와 대다수 언론들도 자칫 야기될 수 있는 국적과 인종 갈등의 소지를 진화하면서, 포용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을 화해와 단합의 계기로 승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비슷한 참사가 재발했을 때 지금의 미국은 그때처럼 성숙한 태도를 보일까?
나치 당시와 비슷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 논란은 나치가 통치하던 독일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복스(Vox)는 유럽 중세시대에 유대인들이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을 납치해 피를 뽑아 유월절과 함께 시작하는 무교절에 먹는 누룩이 없는 빵(matzah)을 만들었다는 거짓말이 퍼졌는데, 이 같은 가짜뉴스가 나치까지 이어졌다며, 오늘날 ‘개·고양이 먹는 아이티 이민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이가 전파하는 발진티푸스(Typhus)로 수백만명이 사망하자 나치를 이를 유대인들이 전파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했는데, 당시 나치에 부역하던 의사들은 하류층의 불결한 유대인들 때문에 발진티푸스가 퍼지는 것이라는 가짜논문을 발표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민자 혐오는 어느 이민자사회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민자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다.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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