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성(姓) 따 탄생한 휴스턴
휴스턴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브리핑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 평가전문기업”이라며 엑트지오(Act-Geo)를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휴스턴에 대한 언론노출과 관심도 상대적으로 커졌다. 엑트지오 본사가 휴스턴에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휴스턴에 대한 여러 궁금증 중에는 세계에너지 수도로 불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 평가전문기업”인 엑트지오가 있는 휴스턴은 왜, 언제부터 ‘휴스턴’으로 불리게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휴스턴에 오래 살았다면 휴스턴이 왜 휴스턴으로 불리게 됐는지 알 수 있겠지만, 다른 곳에서 살다가 왔다면 모를 수도 있어 휴스턴을 소개하려고 한다.
휴스턴 188년전 탄생
휴스턴시는 1836년 8월30일 탄생했다.
휴스턴시는 어거스터스·잔 엘렌(Augustus·John Allen) 형제로부터 시작됐다.
1836년 4월21일 샘 휴스턴(Sam Houston)이 이끄는 텍사스혁명군이 샌재신토(San Jacinto)에서 텍사스를 쳐들어 온 산타 아나(Antonio López de Santa Anna) 멕시코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나고 약 4개월이 지난 8월30일 어거스터스·잔 엘렌 형제는 현재 휴스턴 다운타운으로 흐르는 버팔로바이유(Buffalo Bayou) 주변의 땅 6,642에이커를 에이커 당 1.40달러에서 사들이면서 이 땅의 이름을 텍사스혁명을 승리로 이끈 샘 휴스턴 장군의 성을 따 ‘휴스턴’으로 명명했다.
텍사스공화국(Republic of Texas)은 1837년 6월5일 엘렌 형제가 사들인 땅을 시(市)로 공식 인정했고, 제임스 홀만이 휴스턴 1대 시장으로 선출됐다.
텍사스혁명 당시 전쟁에도 참전했던 홀만은 엘렌 형제가 휴스턴 부지를 사들일 때 토지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중개인이었다.

휴스턴은 누구?
휴스턴에는 샘 휴스턴의 흔적들이 샘휴스턴 고속도로(Sam Houston Parkway), 휴스턴대학(University of Houton), 그리고 휴스턴항구(Houston Ship Channel) 등 곳곳에 이름으로 붙여져 남아있다.
그렇다면 휴스턴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휴스턴은 휴스턴 사람이 아니다. 텍사스 사람도 아니었다.
휴스턴은 1793년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가족과 함께 테네시로 이주했다.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일하기 싫었던 휴스턴은 집에서 도망쳤지만, 멀리가지 못하고 인디언부족마을 체로키네션(Cherokee Nation)으로 들어갔다. 휴스턴을 받아들인 족장은 갈가마귀(Raven)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휴스턴은 젊은시절 전쟁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812년 영국군과의 전투와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어깨에 총을 맞고 가랑이에 화살을 맞으면서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에서 얻은 명성으로 휴스턴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휴스턴은 2개 주에서 주지사에 당선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휴스턴은 테네시에서 주지사에 당선됐고, 텍사스에서도 주지사에 당선됐다. 미국 역사상 2개 주에서 주지사에 당선된 정치인은 휴스턴이 유일하다.
테네시에서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주지사에 당선됐지만 결혼 11주 만에 이혼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서 주지사 임기를 시작한지 2년만에 사퇴했다.
이후 아칸소를 거쳐 1832년 텍사스에 정착한 휴스턴은 멕시코와 전쟁이 발발하자 군대를 조직해 싸웠고, 1836년 지금의 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약 18마일 떨어진 샌재신토에서 산타 아나 멕시코 대통령으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전쟁의 승리로 휴스턴은 텍사스공화국(New Republic of Texas) 대통령에 취임했고, 이후 텍사스가 연방에 편입되면서 주지사를 맡는다.
전쟁에서 두각을 보였던 휴스턴은 호전적이었다. 특히 술을 좋아했던 휴스턴은 한때 화를 참지 못하고 연방하원의원을 잔인하게 구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 특히 호머를 좋아했고, 벨벳 슈트부터 텍사스 사이즈만큼이나 큰 나비넥타이까지 화려한 패션으로도 유명했다.
텍사스공화국 대통령을 지냈지만 휴스턴은 연방주의자였다. 남북전쟁 중에도 휴스턴은 연방탈퇴를 반대했다. 이 같은 이유로 휴스턴은 1861년 텍사스 정계에서 퇴출됐고, 2년 후 사망했다.
휴스턴은 휴스턴시에서 북쪽으로 약 70마일 떨어진 헌츠빌(Huntsville)에서 사망했는데, 헌츠빌에 휴스턴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휴스턴과 달라스를 잇는 45번 고속도로(I-45) 출구 112(Exit 112)에 세워진 휴스턴 동상은 67피트의 높이로 데이비드 아딕스(David Adickes)가 조각했다.
오늘날 휴스턴은?
휴스턴의 이름을 따 탄생한 휴스턴은 도시설립 188년이 지난 현재 미국의 4대 도시로 성장했다.
휴스턴은 여러 예명으로 불리는데, ‘우주도시’가 가장 널리 사용된다.
1969년 유인 우주선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휴스턴에 있는 우주항공국(NASA) 통제센터와 교신하면서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호는 착륙했다”(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라며 인류최초의 달 착륙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 전 세계에 방송되면서 휴스턴은 이후 우주도시로 불리고 있다.
휴스턴은 ‘세계에너지수도’로도 불린다.
휴스턴에는 전 세계 에너지회사들이 상주해 있는데 석유와 가스를 탐사, 시추, 생산하는 업스트림 600개 이상의 기업과, 1,100개 이상의 유전 서비스기업, 그리고 캐낸 석유를 운송하고 저장하는 미드스트림 180개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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